오주안의 작업 속 대상은 실재하지만 변형되고, 파편화되어 본연의 물질성을 잃은 채 묘사되고 있다. 그것들은 언어화될 수 없는 언어, 구체화 할 수 없는 시간 속에 부유하는 어떠한 대상들로, 화면 안에서 심연의 두려움과 긴장, 결핍 등의 불완전한 요소로 표출되고 있다.
작가는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사건이 아닌, 순서 없이 어지럽게 섞인 생각의 단초들을 화면에 담으려 한다. 그것들은 작가에 의해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처음과 다른 형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때 형태가 변형되어 중첩되고 서로 충돌하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유기체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작가를 잠식하는 고정관념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지만 잊혀질 만한 형상을 다시 잡아두려는 상반된 심리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대상이 지니고 있는 속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그 만의 색채와 붓질로 내면의 모호성을 새로이 규정하려 한다. 모두가 스치며 익숙하게 느끼는 대상이지만 본인만의 경계에서 바라본 대상의 모습, 관념, 상황과 감정 등을 생경하게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이것은 헤테로토피아(Hererotopia)적으로 표현되어 어떤 부분은 실재보다 더 생생하고 어떤 부분은 기억을 잃은 것처럼 퇴색되어 추상화되고 있다.
이미지들은 중첩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형되고 상실되고 그러한 시각적 불완전함은 정의할 수 없는 것, 붙잡을 수 없는 상실 혹은 결여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회화의 과정은 의식의 영역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무의식의 영역에 도달하여 사물의 표상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미지들은 드러냄과 숨김의 반복 한 가운데에서 숨은 채 언뜻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또는 공존하여 새로운 어떤 것이 되기도 하는, 비로소 서로의 일부를 허물고 섞이며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환영이 되기도 한다.
글 김수현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