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근본적으로 주변 사물이나 환경의 변화가 없어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생체 주기를 담당하는 여러 유전자1 덕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유전자도 절대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구의 자전처럼 거시적인 영향을 받기도 하고 침대 옆 조명 같은 비교적 작은 차원에도 영향을 받아 주기가 달라진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정말인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정의된다.

우리는 ‘시간이 약’이라는 의미 아래서 순간을 응축하고 생략하는 일을 한다. 개인적 선택 아래 지우고, 덧입히고, 떼어내는 과정을 통해 희미해진 순간만을 받아들인다. 나는 우리가 희석하고 과장하는 순간을 모티프 삼아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순간이 속도를 가지고 이동하거나, 성질이나 모양이 바뀌며 서로 반응하여 질서를 갖게 되는 장면을 생각한다. 비가시적인 경험을 화면에 옮기기 위하여 마치 디지털 화면에서 벡터값 상태의 이미지를 프레임 버퍼에 올려 픽셀로 표시하듯 드로잉을 통해 변환의 과정을 거친다.
우선, 우리가 접근하기 힘든 세계 혹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의 잔여물들을 포착하여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한다. 캔버스로 옮기기 전, 침투한 편견을 지우려는 방법으로 페이퍼 드로잉과 함께 디지털 드로잉을 거듭한다. 캔버스 화면에 옮긴 이후에도 디지털 드로잉을 병행하여 데이터로 존재하는 드로잉 잔여물과 번역된 화면을 동시에 만들고 있다.

포개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라는 레이어가 쌓이는 방법을 모색한다. 여기에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공간과 디바이스를 통한 간접적인 공간을 바라본다. 어떻게 외부로부터 생각-데이터를 빌려 와, 어떤 방식으로 이동성, 가변성 그리고 조직성을 통해 일시적이거나 지속적인 감각을 일으키는지 질문하며 접근하고 있다.  2022


1. Period gene(PER), Timeless gen(TIM), CLK, CYK 등 생체 시계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유전자.